제가 사는 시골마을에는 가까운 주변에 10가구 정도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혼자 사는 집들도 많고 돌아가시고 난 후 빈집이 된 집도 있습니다. 그나마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뭐라도 하시긴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서 요양사가 오는 집도 있고요. 외부 방문객은 별로 없고 요양사가 오는 시간에 주변 노인분들끼리 한집에 모여 텔레비전 보며 시간 보내는게 유일한 대화시간으로 보입니다.
저희 집 앞과 옆 모두 80대의 노인분들이 혼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3시경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강아지들이 창가로 달려가더니 짖기 시작합니다. 앞집 할머니께서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습니다. 집과 현관에 불을 켜고 옷을 껴입고 나가보니 앞집 할머니께서 방안에 누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텔레비젼을 때려부수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합니다. 집에 들어가보니 다행히 집안에는 아무도 없고 부쉈다는 텔레비젼이 멀쩡합니다. 할머니는 방안을 찾아다니며 강도들이 어디로 숨었는지 찾아봅니다.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나쁜 꿈을 꾸신건가 생각했습니다. -_-;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것 같고 텔레비젼도 화면이 부서지거나 고장난 데 없이 잘 나온다고 말하고 텔레비젼 끄고 문 잘 잠그시고 주무시라고 하고 나왔습니다.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켜놓고 보일러는 꺼진 상태인지 바닥과 실내공기가 차갑고 전기장판을 깔고 주무시는 듯 했는데 전기 장판이 반절만 켜놓은건지 한쪽만 약간 미지근하고 추워 보입니다. 걱정스럽긴 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왔고 불을 끄고 누웠습니다.
아직 잠이 들지 못하고 있는데 한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옷을 다시 챙겨입고 나가니 앞집 할머니가 집에 누군가 있다고 합니다. 같이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경찰을 불러야 할거 같다고 불러 달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켜져있는 텔레비젼을 보면서 왜 여기 사람들이 들어가 있냐고 합니다. 텔레비젼 뒷쪽과 벽 뒤 방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있는지 찾습니다. 이제서야 뭔가 이상하다 느꼈습니다. 텔레비젼을 켜놓고 그게 화면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는 듯 했습니다.
텔레비젼을 끄면 그 사람들 모두 사라지니 끄고 주무시라고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물소리 같은... 물소리 나는 방의 문을 열여보니 화장실입니다. 세면대 위의 수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도를 닫고 얼른 주무시라고 하고 다시 나왔습니다. 또다시 10분 정도 지나고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앞집 할머니 입니다. 다시 옷을 입고 나가 앞집에 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껐던 텔레비젼이 다시 켜져있습니다. 텔레비젼 안에 강아지가 나오고 사람들이 보이니 왜 이 사람들이 여기 있냐고 합니다. 집에 들어갈때도 마음이 불안하고 급한지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합니다. 경찰에는 전화해도 지금 집안에 아무도 없어서 와도 소용없다고 해도 자기 전화기를 주면서 지서(경찰서)에 전화해 달라고 합니다. 전화기를 보니 연락처에 10명 이내의 이름이 보입니다. 그 중 아들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전화번호가 보여 통화를 눌렀습니다. 근데 몇번 울리더니 꺼집니다. 통화목록에는 거의 매일 전화를 아들 딸에게 한것 같습니다. 대부분 부재중... 사실 할머니는 청력이 좋지 못해서 잘 듣지 못합니다.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해도 대화가 어렵고 전화 통화를 하는게 어렵긴 합니다. 그래서 동네 다른 노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들 딸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경찰을 부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요.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말고 문단속 잘 하고 주무시라고 무슨 일있으면 괜찮으니 말씀하시라고 하고 다시 나왔습니다. 이런 일이 이후에도 몇차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다시 갔을때 보니 분명 주무시라고 텔레비젼을 껐는데 가보면 켜져 있습니다. 아마 텔레비젼을 끄고 나가면 계속 텔레비젼을 켜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멀티탭에서 텔레비젼의 전원 차단 스위치를 꺼버렸습니다. 텔레비젼은 이제 안나오니 내일 보시라고 말했습니다. 리모컨으로 혼자서 텔레비젼을 열심히 눌러도 반응이 없으니 몇번 해보고 그만둡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아침까지 더이상 앞집 할머니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자녀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알려야 할것 같은데 오지랍 같기도 하고 ... 어찌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해가 뜬 후에 앞집 마당을 보니 할머니는 전동차를 타고 어디 외출을 한듯 보입니다. 괜찮아 보여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 이런일이 반복될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